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릭 레스콜라 (문단 편집) == 일생 == 1939년 5월 27일에 [[콘월]] 서부의 항구 도시 헤일리에서 태어났으며, 젊었을 적에는 권투 선수이기도 했으며 투포환에서 학교 기록을 세울 정도로 운동을 잘했다. 1956년에 [[영국군]]에 입대한 뒤 1960년에는 [[로디지아]] 경찰이 되었고, 1963년에는 [[미군]]에 입대하였으며 [[베트남 전쟁]]에 참전하여 [[퍼플 하트]], 청동성, 은성 [[훈장(상훈)|훈장]]을 받았다. 월남전에서 레스콜라는 부하들에 대한 애정과 유머 감각, 이와 대비되는 용맹함 덕분에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.[* 정작 본인은 1992년에 월남전 참전 용사들을 다룬 책이 출판될 당시 표지에 자신의 전투 사진이 있는 것을 보고는 책을 읽지 않았으며, '진정한 영웅은 죽었다'는 말까지 남겼다.] 1967년에 미국으로 돌아온 레스콜라는 [[오클라호마 대학교]]에서 영어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, 이후 법학을 전공하고는 형사 사법을 가르치는 교수로 일하면서 교과서를 쓰기도 했다. 그는 퇴역 후 모건스탠리에서 보안책임자로 일했으며, 1993년에 있던 [[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사건]] 이후 8년여간 매 3개월마다 사고 대비 교육을 해왔다. 사실 레스콜라는 예전부터 세계무역센터도 [[테러]]에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졌으며, 심지어 '다음에 테러가 일어난다면 '''비행기가 타워 중 하나에 충돌할 것이다''''는 생각까지 해왔기 때문에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지만,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. 그러나 그의 예상은 [[9.11 테러]]로 현실이 되었으며, 2700명의 모건스탠리 직원 중 2,687명과 그 날 강의를 들으러 온 250명의 투자자들이 그의 교육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며, 2700명 정도나 되는 모건스탠리 직원 중 이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단 '''13명'''밖에 없었다. 정작 레스콜라는 [[제2세계무역센터(붕괴 이전)|빌딩]]을 탈출했음에도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또 다시 빌딩으로 들어갔고, 결국 제2세계무역센터가 공격을 받은 지 56분 뒤인 오전 9시 59분에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을 끝으로 [[9.11 테러/세계무역센터의 붕괴|목숨을 잃었다]]. 2021년 9월 말까지 세계무역센터에서 회수된 유해 중 릭 레스콜라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는 없었다고 한다. 생전에 아내 2명을 두었으며, 1972년에 결혼한 첫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자녀 2명과 이혼 후인 1998년에 결혼한 두 번째 아내가 전 남편과 낳은 3명의 의붓자녀를 남겼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